미드 - CHERNOBYL - 당신의 거짓말의 대가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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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 CHERNOBYL - 당신의 거짓말의 대가는 무엇인가요

  • 역시 영화는 큰 화면으로 봐야죠.
  • 얼마 전, HBO에서 만든 드라마, 왓챠 플레이에서 독점 공개한 “체르노빌”을 특별상영회를 통해서 보고 왔습니다. 물론 이미 아이패드를 통해서 다 보기는 했지만, 같은 작품이라도 암실에서 그리고 모바일 기기와는 차원이 다른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영화적인 경험을 선사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급적 영화관에 가려고 합니다.
  • 20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어른이 되면 집에 암실을 설치하고 영화를 볼 거야”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는데, 어느새 그런 말이 가진 무게를 깨달아버린 어른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왓챠 플레이의 배려로, 잠실 롯데월드 21관에서 봤는데 스크린이 매우 크더군요 호호.

한계점까지 밀어붙인 몰입감

  • 1시간짜리 5편의 드라마를 연달아서(중간에 30분 쉬는 시간이 있긴 했습니다) 봤습니다. 1986년 4월 26일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발생했고, 저는 그저 그런 사건이 있었다더라,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을 뿐이죠.
  • 드라마 “체르노빌”은 실제 사진들과 비교해봐도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으로 실제 현장을 거의 실화에 가깝게 촬영하였습니다. 심지어 드라마 끝에서 보이는 실제 인물들의 모습들을 보면, “어라 배우와 똑같이 생겼네”싶으니까요. 즉, 이렇게 철저한 고증과 현실성을 확보하여, 드라마라고 하기는 하지만, “마치 제가 실제 체르노빌에 있는 것”처럼 몰입해서 보게 됩니다.
  • 몰입도와 현장감. 사실 이게 “체르노빌”이 가진 가장 큰 힘이죠. 물론, 저는 실제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몰입도’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지만, 실제 당시에 체르노빌에 있었던 사람들이 저 영화를 보게 되면, 그때 가졌던 공포가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만큼, 특히 초반의 경우는 그 현장감이 펄떡거립니다.

기술과 사람 그리고 시스템

  •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잘 모르는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감상을 던져줍니다. 그리고 그 감상은 앞서 말한 현장감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저는 다음의 것들을 느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원자력 사고의 무서움: 멀쩡한 사람이 피부가 벗겨지고, 화상을 입고,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아닌 무엇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면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체르노빌을 보면서, 기술이라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 생겨나죠. “기술이 최후에 만들어낼 디스토피아”라는 것은 인공지능과 같은 다른 과학기술에서도 유효하지만, 원자력 발전은 이미 발생한 사고이며 동시에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사고니까요. 후쿠시마의 사례도 있고. 이렇게 말하고 나니, 마치 “공익 광고”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 그곳에도 사람이 있었다는 것: 사고가 발생하고, 누군가는 그것으로 인해 발생할 다른 무서움(체제의 붕괴 등)을 고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지금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 방사선이 가득한 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수명이 짧아지지만, 그곳에서 사람들을 지휘하고, 수조에 들어가고, 굴을 뚫고, 이후의 잔해를 처리하는 것 까지 모두 결국은 사람이 했다는 것.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을까요. 일을 해결한 사람들에게는 정당한 대가, 과연 무엇이 어디까지가 정당한 대가 일지는 모르겠지만, 정당한 대가가 주어진 걸까요. 우리나라도 비슷했습니다. 큰 사고가 터졌을 때 우리는 뉴스나 신문 등으로만 소식을 접하지만, 그 사진과 하나의 문구에 더 깊숙이 들어가면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면으로는 영화 <터널>이 이러한 면을 비슷하게 잘 다루기도 했죠.
    • 시스템 속 도구로서의 인간: 체제 혹은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역할에 깊게 몰입합니다. 특히 시스템이 강건할수록 사람은 그 본인의 역할에 심취하게 되죠.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쉽게 방심을 하고, 거짓말을 합니다. 강한 시스템, 그리고 상명하복의 구조, “까라면 까”의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늘 저를 슬프게 합니다. 사이사이에 정확히 판단하고 상황을 개선하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지만, 보통 그 사람들의 의견은 쉽게 묵인됩니다. 권력이 없으니까요. 그저 “어디 말단이 말을 섞어?”에 가깝죠. “지금 명령을 기록해주십시오”라고 말하던 연구원의 말이 기억납니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곳. 시스템은 허구일 뿐인데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허우적거리는 것만 같아요.
  • 또한 “체르노빌”이 “인간에 대한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저는 대놓고 “정부와 시스템”을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단지, “소련 정부와 체제”를 공격하고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30년도 전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그 사건에서 보이는 모습들이 우리가 겪었던 다른 사건들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거짓말의 대가는 무엇인가?”

  • “체르노빌”이 던지는 이 언령은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힘이 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진실은 감추어지고, 유사-진실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결국 우리는 여전히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치게 많은 유사-진실들 앞에서 우리는 실제에 닿을 수 없어요. 몇 년 전 있었던 사고도 마찬가지였죠. 다르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Wrap-up, 그리고, 당신들의 이익은 무엇인가요?

  • 다만, 실화를 다룰 때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극적인 장면을 위해 실제 사건을 변경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가령, 소련 과학자들의 대다수가 정부의 편에 섰다거나, 레가소프가 KGB와 대립하는 장면들의 경우 “드라마를 위한 창작”이라는데, “드라마를 위한 창작” 또한 “거짓말”과 동의어입니다. 제작진에게 묻고 싶네요. “이 거짓말로 인해 당신들이 얻은 이익은 무엇인가요?”.
  • 또한, 제작진들은 체르노빌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름은 대놓고 체르노빌이고, “실화 바탕”이라는 말이 버젓이 붙어 있죠. “실화 바탕”이라서 가질 수 있는 강점인, 사람들의 관심도는 모두 취하고, “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자유도, 허구적인 면도 가져가서,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것이죠. 저는 이러한 행동이 꽤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영화 “나랏말싸미” 또한 역사 왜곡 논란이 있었고 흥행에 영향을 미쳤죠. 어떤 작품을 볼 때, 그리고 만들 때 우리 모두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필요한 허구였는가?, 과연 어떤 이익을 위한 허구였으며, 당위적인가?”라고요.
  • 덧 1. 몰라도 큰 문제는 없지만, 드라마에서 원자력 발전의 메커니즘과 원전 사고의 원인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왓챠 플레이에서는 이 부분을 위해서, “체르노빌, 과학적으로 100% 이해하기”라는 방송을 만들었습니다(정확히는, “과학 하고 앉아있네”를 제작하는 “과학과 사람들”과 콜라보를 진행한 것이죠) 사실 저는 봐도 잘 모르겠긴 하던데 아무튼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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