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자이고, 관련 분야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파이썬을 주로 사용하고, 대상을 네트워크로 구축하는 일, 머신러닝으로 예측 모델을 만드는 일들을 합니다. 물론 요즘에도 기본적인 내공이 얕다는 아쉬움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만.
오늘 말하려고 하는 것은 “공부하는 것을 꾸준히 정리하는 보여주는 것의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갑자기 블로그를 만들었는가?
2018년 3월에 저는 제 기술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만든 지 1년 하고도 반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무슨 마음이 들어서 갑자기 만들었는지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그저 기술 블로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어떤 로망으로서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분석하는 방법론을 만드는 연구자이고, 대학원 생활을 포함하여 오랫동안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정도 연구했으면 혼자 무엇이든지 착착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하루 종일 제일 많이 하는 것은 역시 구글링이죠.
늘 구글에 남들이 미리 작성해놓은 것을 찾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떤, 자괴감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가끔은 논문보다도 타인의 블로그에서 정보를 더 많이 얻는 자신을 보면서, “내가 과연 박사를 받을만한 그릇이 되는가, 졸업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블로그들을 통해서 몰랐던 지식들을 얻는 경험들이 쌓이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나도 언젠가 내 블로그를 만들어서 내가 연구하고 공부하는 내용을 작성해야지”라는 결심을 굳혔던 것 같습니다.
동시에, 제가 다른 사람들의 지식을 블로그를 통해 받은 만큼, 저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 약간의 허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만, 결심은 결심만으로 존재하다가, 지난해에 개인적인 시간이 조금 생겨 그 결심이 삐죽 튀어나와 블로그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에는, 제가 1년 동안 블로그를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별로 대단할 것 없이, 꾸준히 공부한 것들을 정리했지만 저는 블로그를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배운 긍정적인 자세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저뿐만 아니라, 저보다 뛰어나신 다른 분들도 겪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작성했습니다.
배운 것 1: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많은 대학원생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좌절하면서 살아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최소한 저는 늘 그랬습니다). 저는 논문 1편 쓰기도 버거운데, 앞/옆/뒤 연구실 선배/친구/후배 들은 논문 여러 편을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펑펑 터뜨리곤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거북이처럼 묵묵하게 가야지”라고 덤덤한 척 하지만, 자존감에는 이미 금이 가버린 다음이었습니다.
타인의 눈부신 성과가 저를 더 열심히 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동했다면 이상적이었겠지만, 저는 오히려 그 반대로 “내가 뭘 할 수 있겠나”라는 생각들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지식과 능력이 너무 보잘것없게만 느껴졌었습니다. 블로그를 만들 때, “내가 이걸 통해서 자존감을 회복해야지”라는 목적으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존감을 많이 회복시켜 준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매일 900명가량의 사람이 제 블로그를 방문합니다. 제 블로그로 들어온 사람의 네트워크 또한 좋은 학교와 연구기관,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타인의 인정으로 인해 회복된 자존감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효할까 싶지만, 그러함에도 궁할 때는 이것마저도 아주 소중한 것 같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유효하구나”라는 깨달음은 다시 “내가 그래도 쓸모 있는 인간이구나”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이 정도면 그래도 굶어 죽지는 않겠는데?”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과거에 비해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연구,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 모두 현실에서 의미가 있으니까 저는 제가 맡은 일을 더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배운 것 2: “지식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알고 있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먼 거리가 있습니다.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제일 효과적입니다. 친구에게 설명하다가 스스로 헷갈렸던 경험, 반대로 친구에게 헷갈리는 부분을 말하다가 스스로 깨달았던 경험들, 아마도 대부분 가지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로그를 만들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늘 ‘아 내가 무엇인가를 헷갈리고 있구나’를 깨닫습니다.
글로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제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만 하니까요. 결과적으로 제가 알고 있다고 착각한 지식들 혹은 잊어버린 지식들을 다시 정확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만약 이후에 해당 내용이 헷갈릴 때는 제가 과거에 써놓은 글을 다시 읽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저에게 가장 친숙한 언어로 작성한 글이기 때문에 빠르게 복기할 수 있습니다(물론 요즘에는 귀찮아서 대충 써서 저도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만 하핫).
배운 것 3: “강제적으로 성실해집니다”
블로그를 만든 지 1달 정도 되었을 때는 하루에 10명도 채 안 들어오곤 했습니다. 사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너무 창피해서, 시간이 남을 때 ‘무엇을 써야 할까?’,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연구 중에서 콘텐츠화하여 작성할 것이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렇다고 연구실에서 해야 하는 일들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밤늦게 혹은 주말에 추가 시간을 내어서 글을 작성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평일 기준 200명 정도가 들어와서 초창기와 같은 헝그리 정신이 없습니다 하핫. 그래도 제일 최근에 작성한 글이 일주일 전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내가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안 썼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잠깐이나마 다시 부지런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배운 것 4: “새로운 기회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블로그는 내용을 잘 정리해 두었다면 일종의 포트폴리오로서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해당 블로그에 정리되어 있는 글들은 곧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지식들을 의미하니까요. 다시 말해서, 특정 분야, 특정 기술들에 관하여 많은 글들이 정리되어 있다면 최소한 웹 상에서는 블로그의 주인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인식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블로그를 Google과 Naver 등의 검색엔진에서 색인이 가능하도록 처리해 두었다면 해당 블로그는 마케팅 채널로서도 작용하게 됩니다. 따라서 해당 기술이나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검색 엔진을 통해 관련 내용을 검색하고 그 결과로 개인의 블로그로 이어질 경우, 생각지 못했던 기회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두 가지 정도의 기회가 발생했습니다. 첫 번째는 데이터 분석 의뢰였고, 두 번째는 외국계 유명 IT기업에서의 면접 기회였습니다. 저의 경우 뛰어나지 않아서, 적은 기회가 발생했지만 저보다 뛰어난 많은 다른 분들은 훨씬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배운 것 5: “글을 쓰는 능력이 향상됩니다”
지난 약 1년 반 동안 블로그에 약 450개의 글을 작성했습니다(세어 보니 생각보다 많습니다). 긴 글, 짧은 글, 잘 쓴 글, 대충 쓴 글 등이 매우 다양하게 있겠지만, 이는 제가 글의 구성에 대해서 약 450번은 고민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알고 있는 지식을 글로 변환하는 과정에서는 “서론은 무엇으로 시작해야 하는가”,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는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내용이 길어지는데 글을 분할해야 작성해야 하는가” 등 많은 선택지들이 존재합니다.
초기에는 하나의 글을 쓸 때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소요하였는데 반해 요즘에는 비교적 빠르게 구성을 끝내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단지 블로그에 쓰는 글뿐만 아니라, 논문을 포함하여 어떤 종류의 글을 쓰더라도 과거에 비하여 더 매끄럽고 빠르게 구성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반복하다 보면 늘긴 느는 것 같습니다.
배운 것 6: “문제가 발생하면 (약간) 기뻐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코딩을 하다가, 원인 모를 오류가 발생하면 그저 짜증만 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원인 모를 오류가 발생하면, “블로그에 쓸 글감이 생겼다!”라고 즐기게 됩니다. 이전에 겪지 못했던 문제점이므로, 현재 문제점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어떻게 해결했는 지를 정확하게 작성해서 블로그에 작성할 수 있으니까요. 이후 같은 문제점을 겪을 때 제가 써놓은 글을 확인하면 되므로 편하기도 합니다.
쓰고 보니 약간 정상적인 사고 체계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어쨌거나 과거에 비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된 것은 확실하므로 긍정적인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저는 블로그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어렵게 생각하면 끝없이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정말 쉬운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는 대단한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더 어렵고 힘들어지죠.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도 하니까요. 사실 그냥 글을 쓰는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다만 무엇을 쓰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학원생들은 다음의 글감 예시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읽은 논문 중 한 편을 짧게 요약하고, 본인의 코멘트를 (짧게) 작성
관심 있는 외국 사이트의 기사들을 한글로 번역하여 작성(요약해서 작성해도 상관없음)
오늘 강의 시간에 배운 내용들을 간략하게 정리
중요한 것은, 어렵게 시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단 시작을 하면 그 뒤는 조금씩 나아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치며
마치 제가 블로그 절대찬양론자 처럼 글을 작성한 것 같기는 합니다. 그것은 제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블로그를 만들고 운영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고 제가 스스로를 평가하기에 많이 변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일단 가볍게 산책 나가듯이 시작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대단한 것을 하려고 하면 쉽게 지치고, 과정 자체가 재미가 없어지니까요. 간단하게, 10줄이 채 안되더라도 시작하고 나시면 다음에는 더 쉽고 재밌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주일에 1번 정도, 힘들면 2주에 한 번씩, 그동안 연구했던 혹은 공부했던 혹은 읽었던 어떤 것들도 좋으니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서 훨씬 많은 것을 얻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길고 뻔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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