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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현대 사회에서 좋은 ’스승’이라는 것이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의 삶에 좋은 스승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비평준화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내가 성적이 좋지 못하던 시절 관심도 없던 선생님들은, 고3이 되어 갑자기 반에서 1등을 도맡아 하던 순간들부터 나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그는 그것이 역겹다고 생각했다. 그가 삶에서 일관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것이 아마도 그즈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후, 대학교를 지나, 대학원에 들어가 지도 교수가 생겼을 때 그는 ’스승’이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의 지도 교수는 학문적으로도 인성적으로도 배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는 스승이 되고 싶어 했고 그에게서 존경을 받고 싶어 했다. 그 간극은 꽤나 컸고
가령, 그의 지도 교수는 그가 입학을 한 뒤 약 2년동안 그의 이름을 외우지 못했고, 4년동안 다른 사람과 이름을 헷갈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좀 ’스승’이 되려고 좀 하지 말아라.
내 조금은 삐뚤어진 성격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 나는 아직 내 삶에서 ’스승’이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다만, 꽤나 열심히 ’스승’이 되려고 했던 모습을 가진 사람들은 봤다.
공대 대학원은 반쯤은 작은 중소기업이고, 반쯤은 학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나는 지금도 나의 지도교수에 대해서 감정이 좋지 않고, 잘못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길 원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런 사람들의 대다수는 존경받을 만한 면모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어도 모든 학생들은 자신들에 대해서 존경을 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사람들이 교수라는 직업군에는 지독하게 많이 있다.
나는, 지금도 교수라는 직업이